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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 | 경기도 이천시 원적로743번길 58 (우17309)

현대도예의 조형적 실험과 내적 표현

추천작가 월간도예 2004년 10월호 p.54~57

 

흙으로 얼굴을 만든다. 아니 얼굴을 먼저 떠올린다. 그는 눈감고 손으로 더듬거리며 자신과 가족, 친구의 얼굴을 만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눈을 감고 손끝에 의해 초상조각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얼굴들이 20여개나 된다. 개개의 얼굴은 사실 묘사보다 단순한 표현이다. 마치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거나 또는 무심히 하늘을 보고, 땅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세부 묘사가 생략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무표정한 얼굴들에서 긴장감을 느끼며, 사색과 명상에 젖은 모습이다. 반쯤 감은 눈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다. 촉감에 의해 만든 얼굴에 침묵이 흐른다. 무엇보다 내적 표현의 고독함이 읽혀진다.

이는 90년대 후반 미국 유학을 가서 처음 만든 최지만의 초상조각을 보고 느낀 인상이다.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미국서 도예의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 연구가 아닌 자아 표현에 매달린다. 유학시절 그는 세상과 단절된 고립된 느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을 비판하고 자신을 확인하려는 개념 작업이 우선이다. 이후 그의 작품은 도예가 아닌 내면을 향한 조형적 표현 작업으로 자기 비판적 경향의 심화 내지 극대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 작품인 얼굴 조각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비롯한 친구 모습을 모티브로 한다. 사진이나 거울 없이 바라보는 얼굴들을 촉각에 의해 생각나는 대로 하나하나 흙으로 붙여 나가는 것이다. 그는 얼굴을 만드는데 흙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재료를 선택한다. 갸름한 얼굴에 눈, 코, 입 등을 붙여 나간다. 비록 닮지 않더라도 촉감과 내면의 감각에 의존하여 기억에 충실한 얼굴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모두 비슷한 모습이지만 각자의 독특한 인상을 갖추게 된다. 기억의 잔상처럼 얼굴들이 모두 선한 모습으로 친근감을 준다. 자신의 초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얼굴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은 자아의 정체성이며, 이것이 작가의 ‘순수 자아(the pure self)’이다.

 

미국 유학초기에 시작된 <얼굴> 연작 이후 최지만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 이야기와 현대도예의 조형실험이 병행되면서 ‘순수의 자아표현’에 변화를 갖는다. 도예를 전공한 그에게 흙과 유약, 번조 방법은 가장 매력적인 재료이며 기법이다. <얼굴> 시리즈 이후 점차 그는 자신의 내면에 들리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작업으로 현대도예를 실험하게 된다. 도예를 전공한 그 역시 흙의 원초적 물성과 높은 온도에서 나오는 바탕의 질감, 그리고 상회를 통한 원색의 유약 효과를 떠날 수 없었다. 특히 흰색 바탕에 빨강이나 초록, 노랑 등 유약의 원색적 표현은 그가 가장 선호하는 색채로 최근 작품에도 자주 나타난다.

<얼굴> 이후 제작된 작품은 왜곡된 형태의 인체들로 도조(陶彫)이다. 그는 흙으로 인체를 소조하고, 그 위에 유약과 고온의 번조작업으로 도예적 특성을 살리고 있다. 그의 도조는 볼륨이 있는 구체적 인물 형상을 갖추고, 불과 유약의 원색적 색채에 의해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백토와 테라시지(Terra-Sig)에 의한 검은 색 표면 효과,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 등 유약을 사용한다. 인물 형상의 변형과 원색적 색채로 현대도예의 신표현주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이야기> 작품과 <무제> 시리즈 특징은 기법보다 주제가 강조된다. 표현된 인물들은 대부분 익명적 성격으로 자신의 얼굴이 데드마스크처럼 복제되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사랑과 증오, 고통과 인내, 허무와 절망 등 개개인의 내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소상의 사실적 얼굴에 비해 인체 묘사는 단순화되고 왜곡되면서 비례가 무시된다. 때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날개를 단다거나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난 도조의 표면도 금색이나 흑색, 적색, 청색 등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주제와 신표현주의 경향의 도조는 2002년 미국에서 제작된 <story 1-2>, <human(人)>, <winter Story>, <Untitled> 시리즈이다. 여기서 최지만은 자신이 생각하는 내면세계를 신화적 인간 형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인간 형상에 자신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두개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인간, 그리고 자기 머리 위에 붙여진 여러 사람들의 얼굴 등 내면의 변화가 솔직하게 만들어 진다. 여기서 그는 인간 내면을 추상이 아닌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인체의 완벽한 비례와 균형의 고전적 아름다움보다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만들고 있다.

최지만의 작품은 모더니즘 이후 신표현주의 경향으로 자아 중심의 조형적 작업이다. 1980년대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뉴페인팅이나 트랭스 아방가르드 작가를 비롯하여 자유형상 화가들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그리고 마이너리티의 시각으로 인간을 형상화한다. 추상보다 형상을, 그리고 오브제와 미디어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형식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자아를 보여주는 작업이 <이야기>와 <무제> 연작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사물의 전통적 재현이나 모더니즘적인 추상표현보다 구체적 형상과 이야기를 통해 솔직한 자기표현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만들어 나가는 그의 도조는 원시적이며 소박한 성격으로 원초적 표현이 돋보인다. 비록 변형되고 왜곡된 형태로 인간 형상이 만들어 지고 있으나 자아 표현의 독자적 조형언어로 그의 작품은 누구보다 성격이 뚜렷한 신표현주의 도조로 높이 평가하게 된다.

결국 그의 인간형상은 자기 자신이며,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사색과 조형적 탐구의 결과이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서 심장까지 빼 나가는 인간의 탐욕스러움, 그리고 끝없는 욕망에 의해 돌연변이가 된 인간, 현실과 날개달린 천사 등등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오랜 시간 자신을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모습이다. 인간 형상 작품은 누구의 흉내도 아닌 자기 조형언어이다.

 

2004년 제3회 최지만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우리의 전통 토우와 도자기를 현대화 시킨 작업이다. 이번 근작에는 <21세기.. >라는 명칭을 제목 앞에 붙여 신라시대의 <신라 항아리>와 <기마인물형 주전자>, <고구려 항아리와 기대>, <모자 원숭이 연적>, <동녀형 연작>, <고려인형주전자>를 제작하였으며, 백자로 <21세기 주상복합형 골호>을 비롯하여 <청와대형 태항아리>, <국회의사당형 항아리>를 전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갖는 첫 개인전에서 그는 자아에 집착한 조각적 인물 표현에서 벗어나 우리의 전통 도자기와 토우에 관심을 갖고 시대적 특성을 살린 주제와 표현을 실험한다. 그 가운데 이번 연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전통 도자기의 현대적 표현과 사회, 정치적 주제의 등장이다. <21세기 기마인물형주자> 연작이나 <백자 항아리>, <고구려 항아기와 기대>에서 보듯 그가 제작한 기마인물들이나 백자 등이 매우 이국적이며 낯설어 보인다. 특히 흰색 백자 바탕에 상회된 금색과 적색, 노랑색 등의 효과는 과거 우리의 흑색 토기나 백자와 달리 화려하기 그지없다. 도기 표면에는 반복된 기하학적 패턴 문양을 비롯하여 트럼프에 나오는 서구적 이미지가 화려한 색채로 전사되고 그려진다.

이것을 그는 21세기 우리의 도자기라고 말한다. 서구의 모방과 흉내가 아닌 우리의 전통적 형태를 바탕으로 현대화 시킨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주제 역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고려청자처럼 만들어진 <연적>을 보면 인물상들이 작은 전차와 진로 소주를 들고 있다. 복숭아와 개구리 등 자연을 소재로 만들어진 연작과 달리 21세기 연적은 전쟁의 무기와 소주병 등으로 대신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지만의 주제 변화와 표현 방법의 다양성이다. 이제 그는 자기 표현과 내면을 향한 응시에서 벗어나 전통을 바탕으로 사회와 우리 시대의 현실을 그리고자 한다. 우리의 현대도예 과제로 나타난 전통의 현대화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최지만의 이번 작품 역시 전통 도예의 현대적 작업으로 미숙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내면을 응시하였던 시각이 전통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21세기라는 시대적 특성과 사회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표현으로 한국 현대도예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근작의 특성은 주제를 받쳐주는 재료와 표현 기법이다. 초기 작업에서 자아라는 주제에 억매였다면, 이제 그는 주제와 함께 표현기법을 중요시한다. 백자와 청자의 완벽한 표면 처리와 그 위에 그려진 상회는 이미지의 섬세함과 색채의 화려한 표현으로 그만의 독자적 조형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새로운 조형실험과 내면의 탐구는 우리 현대도예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지며, 그의 발전 가능성에 더욱 큰 기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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